부당거래라는 수작 영화를 봤다.
악마를 보았다, 신세계로 유명한 박훈정 감독과 베테랑,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의로 유명한 류승완 감독의 합작으로,
유해진/류승범/황정민 등 현재 다시 모으는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이다.
사실 난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굳이 매체에서까지 현실적인 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것은 류승범의 대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부당거래의 내용을 아예 모르고 그냥 우연히 쇼츠에서 이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대충 장면 일부를 보면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떠오르게 되는데,
그 스토리가 생각보다 정확도가 높은 편이다.
그런데 저 말은 대체 무슨 맥락에서 한건지,
어떤 스토리길래 저런 대사가 나오는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봤다.
위와 같은 해석이 있던데... 그것도 맞다. 오히려 맥락상으로 보자면 저게 더 맞다.
그런데, 이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준다.
예를 들어,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주양(류승범)의 대사는,
단락적으로만 보면
그저 검사가 우민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그는 낙하산 검사이며, 주변 검사들한테도 따돌림까진 아니어도 미움받는다.
그러나 알 바 아닌 것이다.
그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고, 다른 이들은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인간들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낙하산임에도 불구하고, 빨대꼽고 있는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래도 검사자격증은 땄으니
아껴주고 어떻게든 해주려고 하는
부장검사의 '호의'를
자신의 '권리'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주양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것이다.
이렇듯, 감독의 의도를 한번 더 꼬아서 해석하면
대놓고 악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사실은 그 악역이 앞으로 저지를 짓이 무엇인를 알려주는 장면인 것이라는
재미있는 해석이 나온다.
저 악역의 앞으로의 행동은,
자기자신이 당하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
건방진 짓거리라는 점을.
즉, 주양 검사는 '내로남불'을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줄 캐릭터라고
아주 명확하게 알려주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아
=대놓고 악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면
=악역의 자기소개 장면.
그래서 다시 봤다. 내가 해석한 것이 맞다면,
'내가 겁이 많아서 검사가 된 사람이야'라는 말은, 분명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기에.
힌트를 얻은 것은 코멘터리를 다룬 유튜브 영상이었다.
나는 이 설명을 안믿었다.
저 정도로 성격이 배배 꼬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들이,
코멘터리에서라고 모든 것을 밝혔을 것 같지 않았다.
무릇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진짜 중요한 대사는, 중요 인물들과의 대화에서 나온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 아동연쇄살인사건의 범인과 관련된 씬으로 가보자.
이동석은, 장석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장석구는 대답한다. '너는 나한테 왜 이러세요'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사실 '억울함'에 대한 영화다.
피해 아동은 가해범에게
이동석은 장석구에게
장석구는 최철기에게
최철기는 주양에게
주양은 최철기에게
'저한테 왜 이러세요'라고 따져묻고 싶을 만큼
억울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들이댄다.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는
이미 행동한 이들의 대사다.
이미 행동했고, 실패해가는 이들의 대사다.
실패해가며,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대사다.
실패를 인정해도, '내가 누구때문에 그랬는데!'라고 외치고픈 이들의 대사다.
이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다룬,
'누가 제일 억울한가?'에 대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떡하라고!'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그래서 이 영화에 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건가?라는
관객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감독은 코멘터리에서도 함정을 파 둔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저한테 왜이러세요'라고 아무리 세상에 물어도
'너는 나한테 왜이러세요~'라는- 조롱섞인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할 뻔 했네'라며- 찍어누르는
'콜?'이라면서 - 거절할 수 없는 제안=협박을 건내는
X같은 말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 사실이 우리의 눈 앞에 닥쳐올 때,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건넨 것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우리는 이미 더럽혀져 있다고는 해도
아무리 내 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런 꼴을 당할 만큼 나쁜짓은 안한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하면 그 재앙덩어리들과 얽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는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면서도, 답은 주지 않으려 한다.
작중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된(것 처럼 보이는)이후, 진범이 밝혀지고,
최철기는 주양에게 전화를 받는데,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주양의 말에, 철기는 대답한다.
우리가 정말 잘했다고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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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억울하기 그지없고 그저 슬플 뿐인 끔직한,
도무지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지 모르겠고
지금이 잘된건지 아닌건지
단지 분명한건 이건 내가 바란 모습이 아니라는 것만 확실한
도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그저 슬프고 무력하고 억울하고 화가나고 두려운
그런 상황을
카뮈라는 남자는 '부조리'라고 이름붙였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이 글에서는 다 못할 테니, 반응을 보고 다시 쓰도록 하고....
원래대로 돌아가서,
결국 이 영화는, '부조리'를 맞닥뜨린 인간들의 발버둥을 묘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비로소 주양(류승범)의 이 대사가 이해가 되었다.
주양(류승범)은, 영화 내내 단 한번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이 벌레보듯 하는,
호의가 권리인줄 아는 쓰레기들한테까지
고개를 숙일 줄 알고
접대골프를 받고 있는데
옆에서는 스프링쿨러가 터지고, 앞에서는 잔디깎는 벌레가 기어다니고,
이거 수습하다가 돼지벌레가 넘어져도
그냥 열심히들 산다고 넘어가줄 수 있다
그런데
=벌레 새끼들이 인간인줄 착각하고
인간님들 물려고 덤비는 꼴은 못보겠다
=왜냐면, 나 벌레 무서워할정도로 겁이 많거든.
이 뜻이 맞는것 같다. 즉,
'내가, 겁이 많아서 검사가 된 사람이야.'라는 주양의 대사는
이 영화 전체에서 주양이 정말 솔직했던 단 한마디였고, 그래서 내가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거짓말밖에 안나오고, 사실을 말해도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진실이 악역의 입에서 나온 저 한 마디라니......
........그리고, 뜬금없지만,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공익성을 매우 갖춘 영화이다.
영화 초반, 최철기는 장석구에게 이런 말을 하는데,
실제로 잘먹고 잘사는 사람중에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주요 인물 중에, 불법을 의도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저지른 자는 전부 심판을 받는다.
시체유기 등: 최철기
살인, 감금, 협박 등: 장석구
뇌물수수: 마대호 등등.....
응?
주양은 뇌물도 받고
접대골프도 받고
뇌물을 주기도 하고
유흥업소도 가기도 하고
성매매도 하는데?
잡혀갔다가 바로 풀려났지 않나? 죄가 너무 가벼운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평생 대한민국에서 '부자'가 되기 어려울 확률이 높다.
왜냐고?
검사 안부러운 부자들은
주양이 죄를 저질렀다고 절대 생각 안하니까.
잠깐 다른 영화 대사를 빌려오면,
영화 부당거래의 세계관상에서 존재하는
주양이나 주양 가족들같은 '인간님'들은,
적당히 짖어대다가 조용해질만한 사건은 불법이라고 안친다는 얘기다.
끝으로, 반응이 좋으면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부조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를 나름대로 논해보려 하지만
일단은, 마지막 장면의 감독판 버전을 보내드리며 다음을 기약해보려 한다.
좋은 게, 정말 잘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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